상부갈릴리

/ 가이샤랴빌립보 / 헬몬산 / 하솔

 

하부갈릴리

 나사렛 / 가나 / 므깃도 / 벧산 / 갈멜산

 

상부갈릴리 - 단

 

 

 

 

 

 

 

라이스'라 불리었던 단은 원래 시돈의 페니키아인들의 땅이었다(삿 18:7, 27). 단은 초기 청동기 시대에 이미 강력한 요새 시설을 갖춘 도시였고, 중기 청동기 시대에는 약 50에이커에 달했으며, 높이가 10m에서 15m에 이르는 거대한 방벽(防壁)에 의해 둘러싸여 있었다. 단 지파에 의해 점령된 이래 단은 이스라엘 전체를 나타내는 말인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삿 20:1)라는 말처럼 남방 국경도시인 브엘세바와 함께 북방의 최전선 도시였다. 따라서 외부의 침입이 있을때마다 제일 첫 번째로 공격을 받았다.단은 국경도시로서뿐만 아니라 이교적인 제의의 중심도시이기도 했다.

 

 

 단의 흐르는 샘물

 

 

 

단의 성벽

단의 제의장소와 제단

단의 산당(우상을섬기는)

 

상부갈릴리 - 가이샤랴빌립보

 

 

 

 

 

 

 

예수는 제자들과 함께 가이사랴 빌립보를 방문했는데 이곳에서 자신을 누구라고 하느냐는 질문에 베드로의 역사적인 신앙고백이 있었던 장소이다.(막 8 : 29 )

가이사랴 빌립보는 헬몬산 기슭에 위치한 도시로 단과 가까워 유대인들에 의해 한때 '단' 혹은 '미브짜르 단'(Mivzar, 단의 요새)이라고 불렸다

 

 

 가이사랴 빌립보 영상

 

 

 

가이사랴빌립보 신전터

측면에서본 신전터

판신전의 유적지

 

상부갈릴리 - 헬몬산

 

 

 

 

 

 

 

헬몬산은 주전 19세기 저주문서와 우가릿 문서에 나타나며, 주전 14세기 아모리와 헷족의 조약 문서에 샤리야누(Shariyanu)의 이름으로 맹세한다는 표현 속에 등장한다. 헬몬산의 고대 이름은 성경에도 기록되어 있다. 곧 성경은 시돈 사람은 '시룐'이라 칭하고 아모리 족속은 '스닐'이라 불렀다고 기록하고 있다(신 3:9). 10세기 말까지 아랍의 지리학자들은 '스닐'(Snir)이라는 이름으로 헬몬산을 언급하였다. 헬몬산 기슭에는 현재 드루즈족 등의 소수 민족이 수백년전부터 피난와서 살고 있다.

 

 

 

 

 

 

멀리서본 헬몬산

헬몬산2

헬몬산주변의 꽃

 

하부갈릴리 - 하솔

 

 

 

 

 

 

 

하솔은 가나안 시대와 이스라엘 시대에 갈릴리 북부에서 가장 큰 성읍이었다. 그리고 하솔은 갈릴리 호수의 북쪽으로 8km에 위치한다. 하솔은 고대로부터 이집트로부터 메소포타미아, 시리아, 아나톨리아로 가는 길인 해변도로(Via Maris)가 지나가는 전략적인 위치에 놓여있다. 하솔은 해발 40m에 위치한 상부 텔(12만㎡)과 그보다 훨씬 넓은 하부 텔(70만 ㎡)의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부 텔은 대체로 군 주둔지나 마차를 위한 마굿간등 주로 요새 시설들이 있었고, 상부 텔은 거주지나 행정기관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기둥이 있는 건물

이스라엘의 수로시설

하솔전경

 

하부갈릴리 - 나사렛

 

 

 

 

 

 

 

나사렛은 지중해와 갈릴리 호수의 중간 지점에 위치하며 이즈르엘 골짜기의 북쪽에 해발 300m의 낮은 산지에 위치해 있다. 나사렛은 남쪽을 제외하고는 주변이 모두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나사렛에서 북쪽으로는 멀리 헬몬산의 만년설을 볼 수 있으며, 서쪽으로는 갈멜산이, 동쪽으로는 다볼산이 가깝게 보이며, 남쪽으로는 드넓은 이즈르엘 골짜기가 펼쳐져 있다. 나사렛은 고립된 지역은 아니지만 예수가 자랄때에는 작은 마을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갈릴리 나사렛 전경

나사렛 수태고지교회

마리아의 집

요셉교회
마리아와 아기예수의 모자이크상
회당교회

 

하부갈릴리 - 가나

 

 

 

 

 

 

 

나사렛으로부터 북동쪽으로 6.5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가나는 나사렛과 티베리아로 가는 도로상에 위치해 있는 편리한 점 때문에 비잔틴 시대이래로 성경의 가나로 동일시되어 왔다. 현재 마을에 있는 예수의 첫 이적인 가나의 혼인잔치를(요 2:1-11) 기념하는 교회는 비잔틴 시대의 회당위에 지어졌는데 아람어 비문이 발견되었다. 15-16세기까지 가나 마을에는 유대인들이 살았고 복음서의 가나로 알려지게 된 것은 17세기 콰레스미우스(Quaresmius)에 의해서이다. 따라서 성경상의 가나는 다른 곳이라는 논쟁이 있다.

 

 

 

 

 

 

가나혼인잔치교회전경

가나혼인잔치교회내부

돌항아리

 

하부갈릴리 - 므깃도

 

 

 

 

 

 

 

하이파(Haifa)의 남동쪽으로부터 35km 떨어진 곳에 있는 므깃도는 이즈르엘 골짜기의 서쪽 끝에 있는 산길이 시작되는 지점에 있다. 북부 이스라엘로 들어가는 주요 협곡을 내려다 볼 수 있고, 남쪽 이집트에서 북쪽 시리아와 메소포타미아에 이르는 해변도로가 지나는 지점으로 전략적인 요충지였다.

 

 

 

 

 

 

가나안시대의 제단

므깃도에서본 이즈르엘골짜기

가나안시대의 산당모형

 

하부갈릴리 - 벧산

 

 

 

 

 

 

 

벧산의 취락은 주전 5000년경부터 발견된다. 후대 청동기 시대(주전 16-12세기)에 이 도시는 이집트의 영지가 되었다. 초기 왕국 시대에 벧산은 사울이 전투에서 패배하고 전사함으로 인해 블레셋의 점령 하에 들어갔다. 그러나 다윗과 솔로몬 때는 행정 중심지가 되었다. 이곳은 앗수르왕인 디글랏 빌레셀 III에 의해 북왕국이 점령되면서 주전 732년에 파괴되었다. . 그러나 이 도시는 다시 주전 63년에 로마가 정복한 이후에는 이방인들에 의해 지배되었고, 데카폴리스의 한 도시로 북 이스라엘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가 되었다.

 

 

 

 

 

 

벧산로마유적지

벧산에서 바라본 전경

벧산 텔의 유적지

 

하부갈릴리 - 갈멜산

 

 

 

 

 

 

 

두로와 이스라엘은 갈멜산에서 주전 9세기경에 살만에셀 3세에게 조공을 바쳤다는 기록이 있다. 로마 시대에는 갈멜산에 제단과 성소를 세웠는데 제우스 신에게 봉헌되었다. 요세푸스에 따르면 갈멜산에는 하스모니안 왕조때부터 유대인들이 살았다고 한다. 기독교 시대에 갈멜산은 기독교 유적지로 변했고 십자군시대에 수도원을 세웠다. 13세기에 이슬람 교도들이 수도원을 파괴하고 수도사들을 살해했다. 갈멜산 유적지는 유대인들에 의해 복원되고 보존되어 오다가 현재는 갈멜회 사람들에 의해 관리되고 있다.

 

 

 

 

 

 

갈멜산기념교회 내부

갈멜산기념교회전경

갈멜산(엘리야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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